영화읽는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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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 길에서(조한의 리뷰)

Board 2008/04/07 14:34 posted by h.
<어느 날 그 길에서>
황윤 감독 다큐멘터리 3월 27일 개봉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토종 거북 남생이가 도로변을 힘겹게 걸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좀 무뚝뚝한 인간적인 남자들(야생동물 교통사고 조사원)과 아주 많은 야생동물들의 주검이 등장한다. 인간을 위한 도로, 실은 인간들도 종종 희생당하는 그 길은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만들어낸 괴물의 공간이다. 길이 닦이기 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온 야생동물들에게 그 도로는 여전히 자신들의 영토일 것이다. 야생동물들은 번쩍거리는 두 눈의 거대하고 빠른 동물들을 피해서 그 영역을 조심스럽게 건너다닐 것이다. 그런대도 그들은 어이 없이 죽어간다. 60km 이상을 달리면 운전자도 어쩔 수 없다는 속도. 이 영화는 그래서 도로 건설과 생태 통로를 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영화일까?

영화를 보는 80여분 동안 이곳 저곳에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들은 죽어가는 동물에게 미안해서 우는 것일까? 아니면 무수한 생명들을 바람결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그 체제에서 인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는 것일까? “경쟁에 온 몸을 던지라“고 명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압력 속에서 인간은 이제 다른 생명체와 별다름이 없이 내팽겨쳐지고 있는 자신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그 고속도로 위에서 죽어가는 무수한 생명들과 별 다름없이 보호막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성찰, 내게 이 영화를 그런 성찰을 하게 하는 영화로 읽힌다.

영화가 개봉하면 나는 황윤 감독의 첫 번째 작품, <작별>을 보러갈 것이다. <작별>은 <어느 날 그 길에서> 이전에 만든 작품으로, 선천성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난 동물원의 새끼 호랑이를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야마가타 국제 다큐 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한 수작이라고 하는데, 수작이 아니더라도 나는 작품을 보러 갈 것이다. 동물원에서 보호를 받는 목숨이건 야생에서 보호받지 못한 목숨이건 간에 별 차이가 없는 삶이 아닌가? 그 어떤 목숨도 보호받지 못하는 ‘생명 권력’의 시대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배제된 자들이 세상을 가득 매우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푸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예견했다.
"중세 군주들의 권리는 인민을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이었다. 19세기 근대에 새롭게 정착된 권리는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다."(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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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황윤 다큐의 불편한 진실

: 남동철 | 2008.03.28


이번호에 정재혁 기자가 글을 보다 눈물이 뻔했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별> <어느 길에서> 소개한 그의 기사는 지금 땅에서 야생동물들이 처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황윤의 다큐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과연 보는 좋을지 걱정도 됐다. 야생동물들이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의 참상을 전하며목장갑이나 대걸레 조각이 야생동물 시체로 착각하기에 가장 쉬울 정도로 야생동물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문장을 보니 비록 동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과연 화면으로 그걸 확인할 용기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동물원의 실상을 전하는 <작별> 경우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꺼림칙했다. 영화를 보고나면 동물원에서 놓고 누리던 즐거움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서다. 분명한 것은 내가 피한다고 현실이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두편의 다큐가 일깨우는 불편한 진실은 오히려 그런 외면 때문에 여태 그대로일 것이다.


황윤 감독의 다큐 작업에 영감을 줬다는 <동물원의 탄생>에는 19세기와 20세기 서구에서 동물원에 전시할 동물을 모으기 위해 어떤 짓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묘사가 나온다. “사자의 경우 예외없이 어미를 먼저 죽인 다음 새끼들만 포획한다. 호랑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이들 동물을 덫이나 함정 같은 것을 이용하여 잡을 경우, 이들이 너무 힘이 세고 길들이기 어려우며, 대체로 저항하는 도중에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가 열성적인 활동을 벌이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불과 100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마리 새끼를 포획하기 위해 수십 마리의 어미를 죽였다. 그나마 유럽까지 가는 배나 기차에서 스트레스로 죽는 동물이 많았고 동물원에서도 오래 살지 못했다. 학살이 더이상 상상할 없는 과거사가 됐다 해도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원에 감금된 동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 가운데 하나는 당시 동물을 포획하던 이들이 가졌던 생각이다. “동물 포획은 한때 인간이 동물과 마주칠 가졌던 의식적인 경건함은 더이상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에 관리와 수송 같은 실용적인 이유만을 따져서, 포획자는 대개 어른 코끼리들을 먼저 간단히 없애버리고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새끼들을 붙잡는 힘을 쏟았다.” 가장 손쉽게 포획하기 위해 어미를 먼저 죽인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실용적인 생각이었다. 동물의 아픔 따위에 눈돌리지 않고 인간의 이익과 편리만을 생각하는 것이 실용의 함정임을 당시 사람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은 아직 로드킬에 무관심한 나라다.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능히 짐작이 가는 얘기다.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 길이라며 인간도 가축 몰듯 쫓아내는 나라에서 동물을 염려하며 길을 뚫었을 만무하다. 개발의 한길로 매진한 지난 역사가 저지른 만행을 어떻게 되돌릴 있을까. 이제